독감체험수기 1
경희고려한의원장
한의학박사 문 희 석
2015년 1월 13일 화요일에 평소 잘 지내고 있는 박 00 후배가 독감에 걸려 내원하였다.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곧 바로 누워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아프고 지쳤을까 하는 연민에 베드 하나를 내어주고 온돌침대에 누이고 한약달인 감기약과 함께 침과 뜸 시술을 하고 푹 쉬게 하였다. 점심시간 되어서 같이 식사를 하고 베드에 가서 다시 눕게 하였다. 나는 며칠 전에 생굴을 과하게 먹고 배탈이 나서 물똥 같은 설사를 하루 네 번을 하고 나서야 정상으로 회복된 차였다. 그런데 설사를 하면서 잔기침이 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약간의 몸살이 나면서 욱신거리기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테니스장코트에 나가서 운동하고 출근하였다. 온몸이 칼로 에이는 것처럼 자근자근 쑤시고 아팠기 때문에 혹 후배한테 옮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다. 잔기침은 계속되고 으실 으실 추웠다. 하루 종일 환자에게 침 시술할 때에는 검지 손 합곡 혈 틈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와 잔기침을 더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 옥스퍼드대학 지영해 교수 특강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하여 택시를 대절하여 선릉역으로 갔다. 강의도중 기침과 콧물 추위 그리고 몸살 두통 등의 통증이 심하여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면 오로지 눈만 감고 돌부처처럼 앉아서 귀만 열어 놓았다. 물질주의를 극복할 패러다임은 존재하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선포와 같은 강의를 들었다. 북극 빙하 속에 묻혀있는 메탄 층이 녹으면 인류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과 25년 뒤의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거울을 보니 안면이 부어올라 정상이 아니다. 평생 몇 번 걸릴까 말까하는 독감 걸린 몸을 이끌고 오로지 참을 인자 하나로 버틴 것이다. 끝나자마자 먼저 인사하고 다들 저녁 식당으로 가도록 하고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에서는 열이 나고 땀이 홍건하게 흘렀다. 이불이 젖는다. 천궁계지탕을 먹으니 땀이 잠시 멎다가 시간이 흐르면 다시 땀이 난다. 천궁계지탕을 지속적으로 복용하였다. 소변은 짙은 갈색 정도의 색으로 거의 조금만 보았다. 거의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몸이 들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마치 나의 몸 안에서 正氣와 邪氣가 전투로 치열하게 육박전을 치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 안에 세포들의 유전자가 전 기관 조직을 총동원하여 일사불란하게 면역체계와 모든 신경계와 혈관계 오장육부와 피부와 근육 골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생협력하면서 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체내 유기적인 방어기능은 놀랍고도 신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