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체험수기 2
경희고려한의원장
한의학박사 문 희 석
나는 마음속으로 50조에서 70조의 수에 달하는 몸 안의 세포들에게 그의 유전자들에게 장렬히 싸워주기를 기원했다. 확실한 믿음을 내 몸에 메시지를 전달했다. 진통제나 항생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의 힘으로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나는 아침마다 일찍 비둘기 공원에 나가서 운동을 한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하여 아침운동을 한지가 어언 5년이 되었지만 아침이슬에 노출되는 것이 건강에 썩 좋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특히 감기에는 특히 그러하다.
몸살 난다는 뜻은 몸의 살이 타들어간다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이 급할 때에는 자기살을 태워서 병마와 싸우는 에너지로 쓰인다. 그 동안 몸이 아픈 것이다. 지끈지끈 쑤셔댄다. 근육살을 태우는 것이다. 지방을 태워 쓰지 않는다. 5일간 몸살을 앓고 나니 체지방은 그대로이고 근육양만 1.5키로가 빠져 달아났다. 뼈와 살이 녹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살은 지속되고 으스스 추우면서 등판이 막 쑤셔댔다. 돌부처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외에 천궁계지탕을 한재 지어 마시기 시작했다. 발열 자한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한증보다는 허증인 상풍증에 가깝기 때문이다. 본방으로 열과 땀이 곧바로 신기할 정도로 싹 감춰버리는 것을 알았다. 계지의 효능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너 시간 지나자 다시 발열과 땀이 난다. 또 복용하면 그치기를 반복했다. 아직 근육 살이 타들어가고 있다. 몸살로 아직 아프기 때문이다. 식사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무거나 잘 먹는 잡식성인 나는 식욕이 없고 한 숟가락을 먹으면 음식이 식도를 거쳐 배속에 넘어갈 때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소화기능이 더뎌졌음을 알았다. 식사량이 줄을 수밖에 없었다.
소변의 변화도 역시 뚜렷하다. 물은 평상시처럼 적당히 마셨는데 발열과 자한으로 인하여 소변양이 현저히 줄고 색도 진하게 나왔다. 거의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해열이 되고 땀이 멎고 몸살이 좋아지면서 소변도 양이 늘고 힘도 생기고 맑고 시원하게 나온다. 비로소 독감으로부터 해방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한이 있을 때에는 따듯한 물을 훨씬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 해열하는 데 물 부족이 일어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마치 소방수가 물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대변의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식사량이 줄면서 변비경향을 보인다. 양도 작아지고 보기 힘들어진다. 몸살이 호전되기 시작하면 대변이 황금색 대변을 보게 된다. 매우 좋은 소식이다.
독감을 앓는 과정에 기관지 호흡기의 변화도 살펴보면 페렴까지는 아니더라도 발열로 인하여 담이 많이 생기고 기침도 꽤 나옴을 알 수 있다. 폐 안에서 담이 생성되어 배출되기 시작한다. 호흡을 통해서 열을 발산하는 해열작용은 정말 위대하다. 하지만 그 부산물로 가래가 많이 발생되고 혈흔도 함께 배출된다. 코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코 가래가 많이 발생하고 묽은 흰색가래에서 짙은 회색가래로 변했다가 진한 누런색에 피가 섞인 가래로 점점 심화된다. 몸살이라는 전쟁이 끝나도 부산물인 담은 계속 배출된다. 오히려 담은 더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적어도 2,3일은 간다고 본다. 코가 헐고 코피가 간간히 나온다. 코가 부었다. 아프다.
발열오한 자한 신체통 등의 몸살감기 독감이 지나가자 내 몸은 전흔만이 남아 몰골이 참혹해졌다. 체중이 줄고 근육량이 빠져 얼굴도 헬쑥 해지고 내안의 다해버린 면역체계와 병마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백혈구 시체들과 지친 세포들 오장육부와 사지백해들의 상처들 모두가 위로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단백 스테미너 음식을 섭취한다. 옻닭도 좋고 장어류도 좋다. 계란이나 우유도 좋다. 적당히 운동도 시작하면서 양을 늘려야 한다.
독감의 고통이 쓰나미 처럼 지나간 후에도 여진은 계속된다. 몸 상태가 거의 탈진되고 몸속에서 생긴 담들이 몸 바깥으로 배출되어야 한다. 폐기관지 내에서도 가래가 더 끓기도 한다. 깊숙이 폐저부에 자리 잡은 담은 잘 나오지 못한다. 기침을 통해서 배출되지만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힘주어 뱉으려 하면 기관지내 혈관이 터져 혈담으로 배출된다. 코 가래도 역시 코피와 함께 코 가래를 배출시킨다. 밤새도록 뱉은 담으로 두루마리 휴지 한통은 다 썼나보다. 뱉고 또 뱉어도 계속 밤새도록 나온다.
일주일이 다 되어야 몸살은 멈추었다. 목소리는 가라앉은 지 이미 오래다. 증상이 심한 상태에서 호전되기 시작하면서 목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가라앉는다. 지금 감기증상은 없는데도 쉰 목소리는 그대로이다. 주사 안 맞고 독감 타미푸르 안 먹고 일연의 독감과정을 직접 겪은 체험을 수기로 적어두는 것이다. 오늘 1월 20일 저녁6시 아직도 목은 여전히 쉬어 있지만 다른 특이 증상은 소멸된 상태이다. 어제 지인과 산 꼼장어를 먹고 소주 한잔했는데 아침에 평화를 느꼈다. 몸이 해방되어 자유를 되찾았음을 알았다.
테니스레슨도 비가 와서 쉰다하고 해서 잘 잤다. 아침 6시쯤 일어나니 몸이 쾌적하였다. 비구름에 폭풍과 함께 천둥 번개로 뒤집어졌던 내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볕이 쨍 들은 것 같았다.
일요일 아침처럼 고요하다.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하고 책보고 아침을 지냈다. 한의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일요일 날 웬일로 전화를 다했냐”고 되물었다. 직원이 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원장님 왜그러셔요! 얼마나 많이 아프시길래 출근도 못하셔요! 오늘 화요일에여.” “어 그래” 하면서 부랴부랴 출근했다. 독감이 독하긴 독했나보다. 15년 1월 20일 화요일을 쉬는 일요일로 착각했으니까 말이다.
2015.1.29